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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Bless you”와 “불났씨유”

낯선 땅에서 여행하거나 거주할 때, 언어와 문화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에서 처음 생활하며 겪었던 인상적인 경험 중 하나는 재채기를 하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주변에서 “Bless you!”라고 말하고, 재채기한 사람은 “Thank you”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Bless you!”는 “May God bless you!”라는 표현을 줄인 말로, 서기 590년 유럽에서 전염병이 유행했을 당시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재채기가 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의 가호를 빌어주라는 특별한 지시를 내린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국에 처음 이민 온 한인 부부가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하는 “Bless you”라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그래씨유”나 “불났시유”처럼 들렸다고 하며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언어 장벽의 단적인 예시이다.   또 다른 경험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가 “Soup or salad?”라고 묻는 질문을 “Super Salad?” 즉, 아주 큰 샐러드를 원하는지 묻는 것으로 오해하여 “Yes!”라고만 반복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비슷한 발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흔한 오해 중 하나이다.   낯선 음식 이름과 발음의 어려움 때문에 일행 중 먼저 주문하는 사람의 메뉴를 따라 “Me, too!”라고 외치는 경우나,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Paper or plastic?”이라는 질문을 그저 봉투에 담아주겠다는 친절한 말로 잘못 알고 “Thank you”만 연발하는 상황도 외국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에피소드이다. 영어는 비영어권 화자에게 쉽지 않은 언어이다. 26개의 알파벳으로 45개의 음소를 표현하며, 한국어에는 없는 ‘f’, ‘v’, ‘th’와 같은 발음은 특히 한국인들에게 어려움을 준다. 예를 들어, ‘wife’를 ‘와이프’로 표기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실제 영어 발음 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또한, 영어의 장모음과 단모음의 명확한 구분은 한국어 발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sheet”와 “shit”처럼 짧은 발음 하나로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단어들은 의사소통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s’ 발음이 단어에 따라 ‘스’ 또는 ‘즈’로 소리 나는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as long as”를 “ass long ass”로 잘못 발음하여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영어는 방문객이나 이민자들에게 때로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한인들도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들의 노력을 칭찬하고 싶다. 사피어-워프 가설은 언어와 문화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반대로 문화를 알지 못하면 언어 습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어와 문화를 깊이 이해한 로버트 할리 씨는 이러한 가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을 방문하거나 이민 오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는 매우 생소한 언어일 것이며,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만큼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국어와 문화를 능숙하게 이해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결국, 외국에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것은 개인의 성공적인 정착을 돕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조국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박시걸 / 캘스테이트 샌버나디노 교수열린광장 한국어 발음 영어 발음 비영어권 화자

2025-04-14

[우리말 바루기] 전화번호 읽는 법

213-345-6789   위 전화번호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213 다시 345 다시 6789”라고 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은행 계좌 번호를 읽을 때도 숫자 중간중간 ‘다시’를 넣어 읽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숫자를 나열할 때 ‘-’ 표시가 나오면 ‘다시’라고 자연스럽게 읽곤 한다. 그러나 이 ‘다시’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시’는 영어 ‘dash’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로는 ‘줄표’를 뜻한다. 일본인들이 영어의 원래 발음인 ‘대시’가 아니라 ‘다시’라고 쓰던 것이 한국으로 넘어와 우리말처럼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영어 발음에 맞게 ‘대시’라고 하든가 우리말인 ‘줄표’라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213 다시 345 다시 6789”라고 하든가 “213 줄표 345 줄표 6789”라고 읽어야 한다. 우리말인 ‘줄표’로 하면 좋겠지만 잘 쓰지 않던 말이라 다소 어색한 측면이 있다. “213에 345에 6789”로 읽거나 숫자와 숫자 사이를 잠시 쉬어 가며 읽으면 어떨까 싶다.   이와 같이 일본식 영어 발음이 우리말처럼 굳어진 예는 이 밖에도 많다. “따불로 드릴게요”와 같이 ‘따불’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double(더블)’의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인조 가죽을 의미하는 ‘레자’는 ‘leather’, 재봉틀을 의미하는 ‘미싱’은 ‘machine’, ‘마후라’는 ‘muffler’, ‘빠꾸’는 ‘back’을 일본식으로 읽은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전화번호 영어 발음 숫자 중간중간 숫자 사이

2025-04-10

[우리말 바루기] ‘아울렛’, ‘아웃렛’

다음 중 영어 ‘outlet’의 바른 한글 표기는 어느 것일까?   ㉠ 아울렛  ㉡ 아웃렛   아마도 ‘㉠ 아울렛’을 고른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울렛’이 ‘아웃렛’보다 발음하기 편리한 듯해 이것이 옳은 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웃렛’을 빨리 발음하다 보면 ‘아울렛’이 되는 듯도 하기 때문이다. 딱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라’가 [할라]가 되듯이 일종의 역행적 유음화 현상이 발생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답은 ‘아울렛’이 아니라 ‘㉡아웃렛’이다. ‘outlet’의 영어 발음을 따라 그대로 ‘아웃렛’으로 표기하는 것이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기원칙이다.   그렇다면 ‘아울렛’이나 ‘아웃렛’이나 표기원칙은 원칙이고 이미 ‘아울렛’이라고 써 왔는데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면 기사에서 “아웃렛 가운데 ○○아울렛, △△아울렛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처럼 한 문장에서도 ‘아웃렛’ ‘아울렛’ 표기가 함께 나와 보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끼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국립국어원은 ‘아웃렛’이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렸으며, ‘재고품이나 이월 상품을 싸게 판매하는 곳’이란 설명을 달았다.우리말 바루기 아울렛 아웃렛 아웃렛 가운데 영어 발음 한글 표기

2023-11-19

[잠망경] 아하와 어허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백번 맞는 말이다. 말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다. 모음(母音) 탓이라는 생각에 잠긴다. 다 ‘에미 소리’ 탓이다.   “아, 그리운 고향!” 하며 탄식한다. “어, 그리운 고향!”이라 하지 않는다. 나도 너도 ‘아버지, 어머니’ 한다. ‘어버지, 아머니’ 하지 않지. ‘아’는 밝고 남성미 흐르는 적극적 어감이지만 ‘어’는 어둡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을 풍긴다.   ‘나’, ‘너’는 ‘아’와 ‘어’ 직전에 콧소리(鼻音) ‘니은’이 들어간 순수 우리말. 나는 당당한 주관이고 너는 약간 어두운 내 자아의 연장선상에 있다. 너는 날뛰며 나서는 나를 다스리는 고충을 감수하는 내 어머니의 직책을 맡는다.   ‘aha!’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강하게 깨달았을 때 튀어나오는 영어 표현. 반면에, ‘uh-huh’는 상대를 수긍하는 소극적 의사표시다. ‘aha’는 목이 확 트인 소리지만, ‘uh-huh’는 성대(聲帶)가 좀 닫힌 채 나오는, 별로 내키지 않는 울림이다. 네이버 사전은 우리말 ‘어허’를 ‘조금 못마땅하거나 불안할 때 내는 소리’라 풀이한다.   금요일 오후 그룹테러피 세션. 정상과 비정상은 어떻게 다르냐? “정상이 아닌 것을 비정상이라 합니다.” 이것이 정상이다, 하는 규정은 누가 내리느냐? “의사가 내립니다.” 아니다. 의사가 아니라 의사가 속해 있는 사회가 내린다. 사회란 무엇이냐? 사회는, 에헴, 관습과 전통을 포함한 현시대의 대다수가 내리는 의견의 총체적인 결론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는 시대마다 달라진다. 정상과 비정상의 세부목록은 결코 의사나 신(神)이 미리 작성해 놓은 게 아니라니까.   12명 중 서너 명이 한꺼번에 “Aha!” 한다.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 나는 속으로 “어렵쇼!” 한다. ‘아’가 아닌 ‘어’로 터지는 간투사. 내 핏줄에 흐르는 순수 우리말, 어렵쇼. 나는 뾰족한 것에 찔렸을 때 “Ouch! 아우치!” 하지 않고 “아야!” 하는 편파적 이중언어자(二重言語者)다.   한글 이중모음(二重母音)에는 야, 여, 요, 예, 얘, 왜 등등 자그마치 11개가 있다 한다. 영어 발음으로 ‘y’ 소리, 또는 ‘이’ 발음이 섞여진 이중모음. ‘야~, 여보세요, 얘가 왜 이래~’에서처럼 어떤 정감을 풍기는 ‘y’ 소리. ‘yes!’ 할 때의 바로 그 ‘이’에 힘이 들어가는 소리!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출석을 부를 때 꼭 이름 끝에 ‘이’를 붙여서 부르셨다. ‘김창남’ 대신 ‘김창남이’, ‘서량’ 대신 ‘서량이’ 하실 때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다. ‘한오수’ 대신 ‘한오수이’ 하셨는데 문법적으로 틀렸지만 마냥 푸근하게 들렸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Charles’ 대신 ‘Charlie’, ‘Bill’ 대신 ‘Billy’, ‘Nick’도 ‘Nicky’라 부르는 사실을 지적한다. 애칭이다. ‘mommy’, ‘daddy’ 다 친근감이 넘친다. 그러나 아무도 ‘Jesus, 지저스’를 ‘Jesusy, 지저시’라 부르지 않아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버르장머리 없는 농담을 해서 미안하다고 얼른 덧붙인다.   이 조심스러운 우스갯소리에 몇몇이 “하하하” 하며 웃는다. 병동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크게 외친다. “Ah, yes! 아, 그렇지,” “Yes, indeedy-doody! 암, 그렇고말고!” ‘indeedy-doody’는 ‘indeedy’의 희언(戱言)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한글 이중모음 순수 우리말 영어 발음

2023-10-31

[열린광장]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임계연령(13세) 전에 와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경우다. 이때는 듣는 대로 따라 해도 미국인처럼 발음할 수 있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 둘째는 직업상 영어가 꼭 필요한 경우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반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회사에서 일했다고 모두 생활 영어에도 능한 것은 아니다. 업무에 필요한 영어만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세 번째가 성인이 되어 온 1세의 경우다. 이들은 공부를 시작할 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영어를 미국식으로 발음하는 것과 말하는 리듬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능하면 초기부터 하는 것이 좋다.   젊은 시절 미국인 여성에게서 영어 발음을 공부한 적이 있다. Right 과 Light을 종이에 적고 발음하면서 따라 해 보라고 했다. 이틀을 따라 했는데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왜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그 선생님은 R과 L 발음 시 입술과 혀 놀림, 입 전체의 모양과 긴장 정도 등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다. 미국인은 어려서부터 소리를  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되지만 성인이 되어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발음 연습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어 어순과 영어 어순의 비교, 말할 때의 리듬을 익히는 법도 알려줘야 한다. 그러면서 점점 영어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다.   오래전 훈련원에 40대 중반의 여성이 온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다 남편과 합류하기 위해 늦게 미국에 왔다고 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미용실을 하고 싶어 영어를 배우려고 하니 남편이 왜 한국 사람한테 배우려고 하느냐며  유태인이 운영하는 회화학원에 등록을 해줬다고 한다.     매일 학원에 갔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3주가 지나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해 같이 공부하는 한인 유학생에게 “알아듣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그 학생은 “우리도 잘 못 알아 들어요. 그냥 다녀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더란다. 빨리 영어 공부를 해서 미장원을 열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등록 후 매일 연습해야 할 내용을 종이에 적어 외우면서 훈련원에 다녔다. 그녀의 절실함이 영어를 하게 했다.     한의사와 현직 간호사가 같은 반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한의사가 미국인과 대화할 기회가 없으니 영어가 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간호사는 “미국인에게서 2년 동안 개인 수업을 받았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어를 배우려는 1세들에게 보통의 미국인은 영어 연습 상대는 될 수 있지만 선생은 되기 어렵다.     영어공부에 성공한 사람들의 다양한 경우를 알아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현명한 선택이야말로 영어를 정복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최성규 / 베스트영어훈련원장열린광장 선택 영어 공부 영어 발음 영어 연습

2023-07-31

[우리말 바루기] ‘피아르’, ‘피알’

처음 영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발음 가운데 하나가 ‘R(r)’이다. [알]도 아니고, [아르]도 아니고 우리말로는 내기 어려운 발음이다. [아] 발음과 동시에 혀를 목구멍 쪽으로 말아 넣으면서 [알]도 아니고 [아르]도 아닌 소리를 내야 한다. 이 ‘R’ 발음을 얼마나 능숙하게 하느냐에 따라 영어 발음의 완성도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널리 알리는 것을 뜻하는 ‘PR’은 우리말로 어떻게 적어야 할까? 우리말과는 체계가 다른 발음이라 정확히 표기하긴 어렵고 차선책으로 ‘피아르’나 ‘피알’ 중 하나로 적는 수밖에 없다.   국립국어원이 제정한 ‘국제음성기호와 한글대조표’에서 ‘R’은 모음 앞에서 등을 제외하곤 ‘아르’로 표기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PR’은 ‘피아르’로 적어야 한다. 실제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한글로 ‘피아르’라는 표제어로 올라 있다.   그러나 영어의 현실 발음과 ‘피아르’는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아르’는 마치 언어 체계가 달라 받침 자체를 잘 발음하지 못하는 일본어에서 억지로 모음을 추가해 [아루]로 발음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그래도 ‘알’로 적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최근 국립국어원은 국어심의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논의 결과 영어 ‘R(r)’의 한글 표기로 ‘아르’와 ‘알’ 모두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피아르’ ‘피알’ 어느 쪽으로 적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DVR’도 전에는 ‘디브이아르’로 적었지만 이제는 ‘디브이알’로 적어도 된다. 늦었지만 잘한 결정이라 생각된다.우리말 바루기 피아르 영어 발음 현실 발음 발음 가운데

2023-06-07

[수필] 삶의 '한 음절' 액센트

“1년 중 한 음절인 하루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액센트를 주지 않는다면 소통이 단절된다 그날에 액센트가 없으면 내 마음 아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1975년, LA에 이민 와서 첫 아파트를 구했다. ‘가스 계좌’를 열기 위하여 ‘남가주 가스회사’를 찾아 나섰다. 전화 한 통화로 개설할 수 있는 것을 왜 직접 회사까지 찾아갔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서툰 영어로 통화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으리라.     바쁜 이민 생활의 톱니바퀴에 물려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이민 준비 과정 중, 한국에서 미국 현지 생활 전반에 걸친 2주 기본 교육을 학원에서 받고 왔다. 그 정보를 믿고 혼자 힘으로 한 가지씩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찾고자 하는 주소는 ‘321 South Hill Street’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 내렸다. 건널목을 몇 개 지나도 ‘Hill Street’를 찾을 수 없었다. 바삐 지나가는 노신사 한 분을 불러 세우고 물었다.     “웨얼 이즈 힐 스트리트(Where is Hill Street)?”     “What?”     “힐 스트리트”, 한 자 한 자 띄어서 다시 말했다. “힐·스·트·리· 트”   “What?”     짧은 두 단어인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종이쪽지를 꺼내 펜으로 적었다. ‘hill street’ 그러자 “오오! 히얼 스트리트” 하며 미소 짓는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go’란 말만 알아듣겠다. 조금만 그대로 더 가라는 뜻인 것 같았다.   너무도 황당했다. 간단한 단어 ‘hill’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L’ 발음이 어려운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I’에 액센트를 주어야 함을 몰랐다. 영어에 액센트가 중요하다는 것은 중학교 때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배웠다. 그러나 한 음절로 된 단어에 액센트를 붙여야 하는 줄은 몰랐다. 한 음절로 된 단어일지라도 거기에 액센트를 주어야만 영어 발음이 되고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말하는 영어를 저들이 왜 알아듣지 못하는지를. 영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읽는 것이리라. 종이에 우리말로 옮겨 적을 수 있는 영어 발음은 한글이지, 영어가 아니지 않는가.    이들 언어는 한 음절 단어에도 액센트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가능하다.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본다. 1년이 아니라, 한 달이 아니라, 오늘 하루, 지금 이 시각, 이 순간에 액센트를 주는 삶.     이러한 삶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고 서로 소통하게 하지 않는가.    부부 사이에서도 그렇다. 1년 365일, 그중 한 음절인 하루.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액센트를 주지 않는다면, 소통이 단절된다. 그날에 액센트가 없으면 내 마음 아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TV에 밸런타인데이 세일 광고가 한창이다. 어느 젊은 목사님 옛 이야기가 떠 오른다. 어느 해 밸런타인데이, 사역으로 바삐 하루를 보내다가 허둥지둥 저녁 8시가 지나서 집에 도착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아내가 지친 얼굴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빈손으로 문턱에 들어서는 그를 몰아세웠다. 아차 싶어 그는 그 길로 장미 한 송이라도 사러 어두운 밤길을 헤맸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참담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특별한 날뿐만 아니라, 주변의 작은 것들도 한 음절 단어다. 아침에 눈을 떴다는 것. 양치질을 할 수 있다는 것. 창문을 열고 봄 내음을 느낀다는 것. 보도에 깨진 콘크리트를 비집고 올라오는 이름 모를 잡초를 눈여겨본다는 것. 이런 단조로운 일상에도 액센트를 준다면, 음미하고 기뻐한다면, 나의 삶은 더 좋고 즐거운 것을 끌어당겨 올 것이다. 누군가 이런 것을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더 활기차고, 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이 된다고 말이다.     나도 늦기 전에 장미 한 다발, 초콜릿 한 상자 준비해야겠다. 예쁜 카드에 ‘사랑해요’라고 액센트를 더해 볼거나. 이주혁 / 수필가수필 액센트 음절 음절 액센트 음절 단어 영어 발음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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